am과 pm
시간 뒤에 붙는 a.m.과 p.m.이 라틴어의 ante meridiem과 post meridiem의 약자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ante는 영어로 before, post는 after이니 정오(正午)를 뜻하는 midday(meridiem, 또는 noon)를 기준으로 a.m.은 before midday(noon), 즉 오전(午前), p.m.은 after midday(noon), 즉 오후(午後)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안다.
12시간 단위를 쓸 때 이 am과 pm은 글로벌 표시가 됐다. 9 am이면 오전 9시, 9pm이면 오후 9시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12am과 12pm에서는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12am, 즉 밤 12시 정각은 오전도 오후도 아닌 자정(子正)이며, 12pm, 즉 낮 12시 정각은 오후도 오전도 아닌 정오(正午)인데 왜 befor(ante)와 after(post)가 붙는단 말인가? 한자어이긴 하지만 우리말의 자정이나 정오로 표현하면 간단하게 해결되겠지만 이렇게 12am과 12pm은 착각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
아날로그 시계를 볼 때는 헷갈릴 수가 없다. 밝으면 12 pm이고 캄캄하면 12 am이니까. 디지털 시계는 헷갈릴 소지가 약간은 있다. 문제는 무엇인가를 기록할 때나 남의 기록을 읽을 때, 특히 영문을 우리말로 바꿀 때 혼란스런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나는 그를 12 am에 봤다.'를 우리말로 그대로 바꾸는 번역자는 거의 없겠지만 바꾸더라도 자정인지 정오인지는 상황 또는 앞 뒤의 문맥을 살펴야 한다. 스마트폰에서 알람을 설정할 때도 자주 헷갈린다. 수요일 낮 12시에 중요한 점심 약속을 하고 알람을 설정했는데 화요일 밤 자정에 알람이 울렸던 적이 있는가? 토요일 밤 12시에 터미널에서 집안 어르신을 마중해야 하니 알람을 설정했는데 토요일 정오에 알람이 울렸던 경험도 마찬가지다. 다행인 것은 스마트폰에서 알람을 설정할 때 12시의 오전과 오후를 헷갈려도 12시간 늦게 알람이 울리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12시 설정을 하는 경우에는 11:55 또는 12:05에 설정하고 있다.
만약 병원에서 12 am과 12 pm을 잘못 적는 경우에는 심각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A 환자는 여덟 시간 간격으로 주사제를 투여해야 한다. 초짜 간호사가 정오, 그러니까 12 pm에 주사를 놓고 차트에 12 am이라고 적어 놓았다면, 그리고 오후 내내 아무도 차트를 안 본다면 이 환자는 스무 시간만인 다음날 오전 8시가 되어서야 주사를 맞을지도 모른다. '설마 병원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한다면 수술실에서 생일파티하고 음식먹고 셀카 찍는 병원에 대한 얼마 전 기사를 떠올려 보자. B 신생아는 2015년 1월 11일 12 am에 태어났다. 이 아이의 생년월일은 며칠이 될까? 일반적으로는 1월 12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12pm으로 적었다면 이 아이의 생년월일은 1월 11일로 12시간 먼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am과 pm이라는 라틴어 약자 대신에 m.n.(midnight)과 m.d.(midday)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는 앞으로 꼭 12 am 또는 12 pm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국립국어원이 추천하는 대로 자정과 정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