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까?
일터를 그만두기 한 달 전부터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자' 하는 평소에 늘 하곤 하던 생각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것도 8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실업급여(공식적으로는 구직급여)를 받는 기간에는 맘 놓고 한 달가량을 여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돼있다. 또 한 가지의 걸림돌은 의사인 친구의 조언이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는 자신이 건강하다고 느낄지라도 언제 어떻게 건강 상태가 급격히 나빠질지 모르니 낯선 곳을 혼자 여행하는 것은 피하라는 이야기다. 아내와 같이 여행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니 아쉽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짧지 않은 기간에 서로 마음 상하지 않고 여행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여행 카페 같은 곳에 가입해서 동반자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젊은이가 짐이 될 것이 확실한 노인과의 동반 여행을 해줄 것일까. 패키지여행도 생각해 봤지만 10여 년 전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일주를 패키지로 다녀온 기억으로는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고령자 혼자서는 패키지여행도 쉽지 않다. 동반자들의 달갑지 않은 시선 따위는 이겨 내겠지만, 싱글 차지라는 가욋돈이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친구의 조언을 무시하고 과감히 혼자 배낭여행을 하기로 결정했다.
유레일 패스를 끊어 동유럽이나 돌아다니자고 생각했다. AirBnB 숙소나 호스텔에서 자고 가끔 야간열차 타고 하면 뭐 큰 돈 들어갈 일 있겠냐고 생각했다. 웬걸 패스 가격부터가 시니어 할인을 받더라고 주머니 가벼운 연금생활자가 부담할 가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차 탈 일 별로 없는 스페인 ~ 포르투갈이나 그리스 ~ 터키가 후보지로 부상했다. 그러다 어느날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한국과 조지아의 축구 평가전이 열렸고 조지아의 경기력에 깜놀했다. 조지아? 이 무슨 듣보잡 국가가 이렇게 축구를 잘해?
폭풍 검색이 시작됐다. 위키백과부터. 예전 이름이 그루지야였다는, 소련으로부터 1991년에 독립한, 우리나라 외교부는 이 나라의 요청에 의해 러시아식 이름인 그루지야 대신 조지아(GEORGIA)로 부르기로 했다는, 그 유명한 코카서스(캅카스) 산맥에 위치한 멋진 풍광을 지닌......... 나라라는 것으로 시작했다. 구글신의 도움을 받아 국내외 블로그를 섭렵했다. '스위스 사람들이 산을 보러 오고,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러 오고, 이탈리아 사람들이 음식을 맛보러 오는 나라', 설산을 배경으로 산 위에 우뚝 솟은 교회에 꽂혀 오게 된 나라 등의 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점점 이 나라로 떠나자는 마음이 굳어갔다. 가성비 좋은 스위스라는 표현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아무튼 물가가 저렴하다는 것도 매우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퇴직 전부터 일정을 짜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직장 동료가 관심을 보였고 의기투합하여 함께 떠나기로 했다. 다섯 달 남은 출발일까지의 포스팅은 여행 일정 짜기에서부터, 주요 정보의 링크(URL), 항공권 끊기, 트레킹 장비 등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기다려라. 조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