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주소가 쉽게 정착되지 않는 이유를 내 나름대로 풀어 본다.
"서양에서는 길이 동양에서는 마을이 중시됩니다. 밀은 영양가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단위당 수확량도 적고 지력(地力)을 심하게 빼앗는다고 합니다. 밀을 주식으로 하는 유목민은 균형 있는 식단을 위해 고기를 먹어야 하며, 가축을 먹일 풀과 새로운 밀밭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여행을 떠나야 했습니다. 유목민에게는 길은 숙명이었습니다.
쌀은 영양가가 풍부한 비교적 완전식품에 가까우며 수확량도 많고 지력을 쇠하게 하지도 않아 한 곳에서 윤작(돌려짓기)이 가능하며 더운 지방에서는 다모작도 가능합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인은 한 곳에 정착할 수 있었고 마을이 생존의 단위였다고 합니다."
권삼윤 씨가 지은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업무 때문에 우리 주소를 외국어로 바꾸는 일이 잦은 나는 작년부터 꽤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우리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마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근에 개발된 신도시를 제외하고는 도로명주소가 아닌 지번(地番) 주소 체계가 우리의 DNA에 더 어울린다. 지번 주소 체계는 일제의 잔재 어쩌고 하는 것은 밀어붙이기 위한 수단이다. 지번주소 체계를 그대로 두고 동 이름을 아름다운 우리말로 바꿔 'OO 마을'이나 'ㅁㅁ 골'로 바꿀 수는 없었을까? 넓은 도로에는 충무로, 한강로, 태평로, 을지로, 종로 등과 같이 이미 예전부터 도로명주소도 병행되고 있는데 왜 일사불란하게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외국의 거래처에까지 불편을 주는 건지 답답하다. 삽질 공화국의 폐해를 겪고 있는 피해망상 때문에 혹시라도 전 국토를 자 대고 줄 긋는 식으로 개발하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우리나라의 공부 많이 하신 학벌 좋은 공무원 나리들은 언제나처럼 국민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나리들의 머리에는 역사개념이나 지혜는 없고 지식만 넘쳐흐르는 것 같다. 또 무언가 한 건을 터뜨려야 여러 가지 부수적인 이득이 생긴다는 것을 고려하면 도로명주소의 강제성도 심히 의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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