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특집 SBS스페셜 전야
젠야(前夜) - 열도의 위험한 밤
방송일시 : 2013년 8월 11일(일) 밤 11시 15분
열대야를 잊게 해주는 중량감있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일본 대표 정치인들의 도를 넘는 망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이 우경화를 넘어 군국주의로까지 치닫는듯한 모습입니다. 광복절을 앞두고 시의적절한 다큐라고 생각되어 혹시 못 보신 분을 위해 간단히 요약하고 제 소견은 글 말미에 적었습니다.
약 51분 분량의 이 다큐는 아래의 주소에서 무료로 다시 시청할 수 있으므로 강력 추천합니다 회원가입(무료)을 해야 합니다.
SBS의 자체 요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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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언(妄言)!
지금 일본에서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망언들이 그 도를 넘고 있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 정도에서 지금과 같은 예는 없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망언들은 식민지 피해 당사자에 해당하는 우리에게는 정상적인 선린 이웃국가로서의 관계를 포기하는 행위로까지 비친다.
그런데 국내 언론들은 연일 이와 같은 망언들을 전해주고는 있지만, 그 내면의 ‘코드’들을 해독하여 분석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들은 자국 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단순 돌출발언에 불과한가, 아니면 그러한 사고를 정당화시켜주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존재하는 것인가?
젠야(前夜)!
여기서 그 망언들의 ‘코드’ 앞에 서 본다. 무언가 단순하지 않은 느낌이 전해져 온다. 이 지점에서 제작진은 일본의 진보지식인들을 만난다. 결론은 한국에서 바라본 위기의식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일본말이 ‘젠야(前夜)’다. 여기서 ‘젠야’는 ‘전쟁전야, 파국전야’를 의미한다고 한다.
일본은 지금 ‘위기’인가? 이 질문에 일부 중도성향의 학자들을 제외하면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모두 위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위기 국면을 파악하는 방향은 전혀 달랐다. 보수층들의 경우, 동일본대지진으로 더욱 심화된 지금의 일본의 위기를 다시없는 ‘기회’로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일본이 다시 변해야 하며, 그 변화의 동력을 과거 역사에서 찾고 있었다. 일본은 과거 다섯 차례 정도의 큰 위기를 겪었는데, 이를 모두 다 잘 극복해왔으며, 이제 다시 애국심으로 뭉쳐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진보 학자들의 지적은 한결 같았다. ‘전후 민주주의와 평화’에 대한 위기감이었다. 일본 사회 일각에서 드러나는 우경화 현상 자체가 위기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우경화 흐름은 돌이킬 수 없는 현상으로 진행 중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지가네(地金)!
그러면 왜 이러한 우경화 현상이 전후의 민주주의적인 흐름을 뚫고 돌출되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 본성이 변한 게 아니었으며, 미군정하에 만들어진 전후민주주의와 평화가 오히려 예외적인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변하지 않은 본성이란 건 무엇인가? 메이지유신 이후에 확립된 천황제와 군국주의적인 흐름이 그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지가네(地金)’라고. 지가네(地金)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쇳덩어리(메탈)가 그 하나이며, (숨겨진) 본성이 그 두 번째 의미이다. 일본의 경우, 이 ‘지가네’가 국내외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계속 살아남았는데, 외양을 도금하여 그 모습을 잠깐 달리하는 경우는 있었다는 것이다. 전후 민주주의와 평화가 그 도금된 외양이었다는 설명이다.
제작진은 이 진보와 보수, 양쪽의 생각들을 따라가 보았다. 일본역사상 다섯 번의 위기! 거기엔 한반도가 있었다. 그리고 한결같이 한반도를 향해 칼을 빼든 일본열도를 보았다. 때론 휘두르기도 하였다. 그 과거 역사에서 이 ‘지가네’를 발견하였다. 국내외적인 환경에 따라 달라져온 일본이었지만 여전히, 그리고 지금까지도 유지되어온 지가네! 지가네는 진보쪽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단순히 메이지시대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 한반도와의 관계를 가질 때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말들은 이렇게 정리된다. 인위적인 천황제를 만들면서부터 시작된 주변국, 특히 한반도를 ‘속국시’하는 역사왜곡과 거기에 더해진 ‘멸시감’, 한편 그 반대로 한반도 주변의 정세변화에 극히 두려워하는 공포감, 다시 말해 가상적국시하는 ‘적대감’이었다.
이 두 개념은 양립하기 힘든 것이지만 일본은 역대로 상반되는 이러한 ‘감정’들을 유전적으로 이어받아오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 중심엔 ‘천황제’가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전혀 변하지 않고 ‘지가네’ 그대로 남아서 메이지시대에 그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한일강제병합은 그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적어도 그 당시의 일본인들에겐 그랬다. 우리만 그것을 몰랐을 뿐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올해 초 도쿄 신오오쿠보 거리에서는 연일 혐한 시위가 벌어졌었다. 극히 일부의 일본 우익단체들이 주도한 것이었지만, 그 기저에는 한반도에 대한 역사적인 멸시감과 적대감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본다. 그런 것들이 하필 지금 이 시점에서 돌출되어 나온 것일까? 역시 일본의 현재진행형인 ‘위기’와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으리라 판단된다. 일본의 위기 국면에서, 그래서 뿌리를 잃고 흔들리는 젊은 세대의 불만감, 혼란, 정체성 상실 등이 역으로 ‘적(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적은 잠재적인 적으로 대두되는 중국, 북한을 넘어, 오히려 한국을 표적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은 위기 상황에서 항상 ‘적(敵)’을 찾고, 인위적으로 ‘적(敵)’을 만들고, 거기에 칼을 휘두른 역사적 선례들이 있다. 현재의 일본을, 위기 상황을 그런 면에서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베노믹스가 성공과 실패,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우리를 비롯한 주변 국제정세가 달라질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일종의 명운을 건 ‘도박’이다.
한결같은 지적들이지만, 아베노믹스의 실패는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지금은 그래서 ‘젠야(前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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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는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한 젊은이와의 인터뷰로 시작한다. 그는 저임금 철야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는 이른바 프리타(비정규직, 계약직, 파견사원, 파트타이머등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총칭; 프리랜서 아르바이터의 일본 특유의 줄임말 )다. 그는 결혼을 포기한 채로 심한 굴욕감을 느끼면서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한 잡지에 전쟁을 희망한다고 기고까지 했다.
"지금 다시 전쟁과 차별의 시대가 오려고 한다. 곤란하게도 이 시대의 진실을 사람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매스미디어는 이미 전쟁과 차별의 시대를 타고 있다. 과장없는 위기의 시대다." 이 글귀는 소수의 일본인 지식인들의 뜻을 모아 만든 잡지 ‘전야(前夜)’의 창간호에 실렸던 것이다. 전쟁전야를 줄인 말이다.
"최근 수년간 우리가 우려하던 대로, 아니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의 변화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전후 일본에서 오늘날처럼 배타적이고 내셔널리즘, 근린제국에 대한 적개심,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식, 무책임한 자기중심주의가 활개을 치고 날뛴 시기는 없었다." 또 다른 지식인의 글이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브레이크 없는 기차의 질주에 위기감을 느껴 왔던 것이다.
금년 2월 일본의 한류거리라고 불리는 신오오쿠보에서 '재특회'라는 혐한단체에서는 도를 지나친 말이 아닌 소리들이 쏟아졌다.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 목매달아라. 독을 먹여라." 이는 소수의 정신 이상자들의 망동이 아니며 이미 일본 사회에 잉태되어 있던 씨앗이 발아하여 조그만 싹 하나가 솟아 오른 것이다. 그 이유는 사회적인 불안과 불만의 희생양으로 한국인을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마치 나치가 유태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과 같은 이유다. 심지어는 우리나라 국가원수의 실물크기 사진을 끌고 다니며 조롱한 일도 기억한다. 51%의 반대편에 서있는 나지만 바다 건너 원숭이들이 우리의 국가원수를 조롱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일본이라는 섬나라는 천재지변등의 국가적 재난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국수주의를 동원해왔다. 위의 SBS의 요약에서 비교적 잘 설명되었기에 나는 쇳덩어리(메탈) 또는 (숨겨진) 본성을 의미하는 지가네(地金)를 다시 언급하지는 않으려 한다. 단순한 쇳덩어리를 불, 바람, 풀무질이라는 일본인 특유의 집중과 노력을 통해 날카로운 일본도로 만들어내는 그들의 국민성을 우리는 너무 쉽게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일본은 고대로부터 신라라는 가상의 적을 내세워 멸시와 두려움이 혼재된 배척감정을 키워냈다.(패망한 백제의 유민들이 그 감정의 뒤에 숨어 있다는 조갑제류의 저질스런 왜곡은 추후에 다뤄보고자 한다.) 간악한 공상허언증이다. 즉 한반도에는 칼이 있으며 그 칼의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자기네가 먼저 칼을 휘둘러야 한다는 논리다.
일본은 군국주의 시대에 천황의 군대로 죽는 국민 개개인의 일신상의 처참함과 슬픔을 기쁨, 경사, 감사, 자랑스러움으로 변질시키는 술수, 즉 감정의 연금술을 사용해왔다. 그 감정의 연금술은 오늘에도 사용되고 있다. 즉 자신들의 과거는 잘못되지 않았으며 "침략의 국제적 정의는 없다."는 정치인 발언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그렇게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도 그들에게는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일왕과 왕비 앞에서 아베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기미가요를 부르며 대동아전쟁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행위를 했는데 그 장소의 플래카드에는 "주권회복, 국제사회 복귀 기념식"이라고 씌여 있었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두 늙은이를 이용하여 극우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는 원숭이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은 가해자가 아니고 피해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소용돌이에 말려든 피해자라는, 자신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많은 것을 빼앗겼다는 그런 피해의식이다. 한 때 세상을 호령하던 가전과 반도체에서 삼성과 엘지에 밀린 것도 자신들의 경영실패가 아닌 후발주자이자 기술을 배워간 한국인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을 가질 것이 뻔하다.
우리는 관동대지진이 있어 났을 때의 조선인 학살의 처참함을 알아야 하며 두고두고 기억해야한다. 어린애까지 죽창을 들고 부녀자는 부엌칼을 들고 나와서 군대가 넘겨준 조선인들을 찔러 죽였던 그 때를 싫어도 기억해야 한다. 끔찍한 사실이지만 그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 우리의 핏줄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들의 만행은 그만 두고라도 그리 오래되지 않는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을 왜곡하고 입을 다무는 언론, 눈과 귀를 가리는 교육이 진행되는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에서 1923년도에 바다 건너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자는 것은 하릴없는 오지랖인가?
지금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전과 후가 문명사적으로 구분되어야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총체적인 위기를 맞고있다. 아베노믹스라는 눈가리고 아웅식의 양적완화 및 재정투입의 성장전략으로 얼마나 더 버틸 것인지는 미지수지만, 아베는 지금 작두위에서 주사위를 던지는 도박을 하고 있다.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덮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경화를 이뤄낸 국수주의 정권이 도발하는 전쟁이다.
며칠 전 입이 험하게 비뚤어진 '아소' 부총리는 "독일 나치 정권이 헌법을 무력화한 수법을 배워야 한다." 발언해서 국제적으로 심한 반대에 부딪혔으나 아직도 그 비뚤어진 입으로 한국등의 주변국에 사과할 일은 없다고 뱉어내고 있다.
지난 6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지산은 평화의 상징으로 남을 것인가, 군국주의시대의 전쟁의 상징으로 남을 것인가? 박근혜정부의 외교차관이 집권 자민당의 선거승리를 기원한다는 덕담을 하고, 국무총리가 SNS 등에서의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따른 일본산 농수축산물의 수입 반대와 우리 국민들에 미치는 악영향 논란을 제지하고 나서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나는 후지산은 전쟁의 상징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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