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풍광

에피소드 1 - 드레스덴, 기억의 문턱에서

Senior Magazine 2025. 8. 20. 18:51

클라라는 나를 검게 그을린 장엄한 바로크 궁전 앞으로 이끌었다. 광장 건너편의 대성당 또한 그을음에 잠겨 있었다. 장엄하고 화려하면서도 스산한 기운은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전쟁의 흔적인지, 세월의 그늘인지. 그러나 오래전 기억 속 풍경과 겹쳐지지는 않았다.
“이곳이 내가 기억하던 바로 그곳일까?”
그 물음은 여행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귀국 후에도 시차와 함께 미심쩍음으로 나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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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클라라.
잘 지내고 있니? 어느새 2년이 흘렀구나.
메스티아 미니버스 정류장에서 너는 낯선 나라의 노인 여행자를 신경써 주었어. 설산의 아름다움을 뒤로한 채, 다시 낭떠러지 길을 떠나려니 두려움이 엄습했었지. 뒷좌석은 이미 여행자들의 배낭이 영역표시를 해버렸고, 불쑥 나타난 네가 호탕하게 시야가 확 트인 운전석 옆으로 나를 끌어 앉혔었지. 기사에게 핀잔을 들으면서도, 너와의 수다와 웃음은 내 공포를 누그러뜨려 주었지.
미니버스에서 기차로 갈아타고 트빌리시로 향하던 길, 폭우로 선로가 잠겨 기차가 산중턱에서 세 시간이나 멈춰 있었지. 조지아 사람들의 놀라운 인내심은 경이로웠어. 그러나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온 나는 다음 일정을 생각하며 조급함을 감추지 못했지. 그때도 너는 끊임없는 이야기로 나를 지루하지 않게 해주었어.
이제 다시 여행을 떠난다. 2년 전과 비슷한 시기, 이번 여정의 끝자락에는 네가 사는 곳 근처, 드레스덴을 들를 생각이다. 혹 네가 여전히 그곳에 있다면, 한 번쯤은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품어본다.
드레스덴! 마흔 몇해 전,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 창밖에 스치던 웅장한 건물들이 아직도 내 기억 깊숙이 남아 있다. 작센 스위스의 기묘한 절경도 나를 불렀지만, 무엇보다 그 장엄한 광경과 다시 마주하고 싶다. 설령 너를 보지 못한다 해도, 네 이메일 한 줄이면 나는 충분하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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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2년 전 허름한 배낭여행자의 모습에서 말끔한 전문직 여성으로 변해 있었다. 유럽식의 따뜻한 포옹. 막내아들과 동갑인 그녀는 여전히 활달했고, 반나절 동안 기꺼이 나의 시티투어 가이드가 돼주었다. 
넓은 광장 주변으로 츠빙거 궁전, 대성당, 교회, 오페라 하우스가 숨가쁘게 들어서 있었다. 그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였다. 외관의 화려함이나 내부의 장식은 내 몫이 아니다. 오히려 내게 중요한 것은, 이 장엄함이 내 기억과 어느 지점에서 맞닿는가였다.
성모교회 옆 레스토랑에서 작센 지방의 전통 케이크, 아이어쉐케를 맛보며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하고 군주의 행렬에 합류했다. 그러나 엘베 강변에서 바라본 유적들조차 여전히 내 의심을 풀어주지 못했다.
클라라는 떠났다. 이제 나는 홀로, 이 미심쩍음을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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