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풍광

에피소드 2 - 검문, 독일과 동독 사이

Senior Magazine 2025. 8. 27. 09:43

프라하 플로렌츠 버스 터미널

프라하 플로렌츠 터미널을 출발한 플릭스버스는, 내가 깜박 조는 사이 보헤미아 중부 고원지대를 달리고 있었다. 잠시 후 클라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국경 검문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검문? 솅겐 지역에서는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의아해 구글을 찾아보니, 불법 이민자와 난민 유입을 우려한 독일 당국이 최근에 다시 검문을 강화했다는 설명이 나왔다.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대한민국의 여권 파워를 실감했던 내게는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실제로 국경 검문소에서 경찰이 버스에 올라 모든 승객의 여권을 차례로 확인할 때도 긴장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심지어 한쪽에선 웃음소리까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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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마인츠에서 출발한 기차가 프랑크푸르트를 지나 동독 국경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게 낫다”는 선배들의 충고가 있었지만, 가난한 유학생에게 야간 기차표는 그나마 감지덕지였다. 그 시절 학생들 사이에서는 동독 국경에서 여권에 찍힌 스탬프가 훗날 곤란을 부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한국의 정보기관이 두려움의 대상이던 시절이었다.

기차가 멈추자 차창 너머로 군인들이 다가왔다. 스무 살도 채 되어 보이지 않는 앳된 병사가 내 앞에 섰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나는 여권 속에  ‘찍으려면 여기에’라는 표시로 여권 크기의 종이 한 장을 끼워 두었었다. 그는 착한 눈빛과 손짓으로 “스탬프를 찍을까?”라고 묻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크게 저었고,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여권을 건네주고는 다른 승객 쪽으로 갔다.

휴우-.

기차는 다시 움직였고, 차츰 새벽빛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창밖 풍경은 잿빛이었다. 어슴푸레 드러난 들판, 칙칙한 건물, 이름 모를 역의 벽에는 해머를 든 노동자와 총을 든 군인이 그려진 대형 프로파간다 걸개가 걸려 있었다. 그것만이 유일한 색채였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넓은 광장과 장엄한 건물들이 나타났다. 숨이 막힐 듯한 충격이었다. 또 한 차례 검문소를 지난 뒤, 기차는 서베를린 구역에 접어들었다. 앞좌석의 고운 두 할머니가 가방에서 과일을 꺼내 내게 나누어 주며 자랑스런 표정으로 입을 모아 말했다.

“분트, 분트!”

bunt - ‘알록달록하다’는 뜻의 독일어였다. 아침 햇살 아래 붉은 지붕과 밝은 벽들이 눈부시게 빛났다.

이런 기억들은 베를린 쿠담거리의 그을린 교회, 올림픽 스타디움의 손기정 선수 명패, 베를린 필하모니에서의 추억과 함께 오래도록 내 안에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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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기억의 조각들이 차츰 잦아들자, 다시 눈 앞에는 현재의 여행길이 펼쳐졌다. 드레스덴 버스터미널에서 클라라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레스덴 중앙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