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은 늘 설렘과 기대 속에 시작되지만, 그 그림자에는 언제나 불안이 따라붙는다. 이스라엘의 이라크 공습 여파는 도하에서 하루 스탑오버로는 바로 가라앉지 않았다. 부다페스트행 비행기는 출발지연과 경로우회를 거듭했다. 그러나 여행에서 두 시간의 지체쯤은 흔한 일. 문제는 중동의 긴장이 내 여정에 직접 스며든다는 사실이었다.
2025년 6월 24일 자그레브.
크로아티아 종단여행을 마치고 자그레브에서 들은 소식은 “이란이 카타르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뉴스였다. 서울의 ‘여행감독관’(둘째 딸)은 이번에도 걱정을 쏟아냈고, 위험상황이라며 즉각 귀국을 지시했다. 그러나 몇 달을 준비한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가족들의 걱정은 당연하지만 연금생활자는 아껴 모은 여행경비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코로나 시절에도 왕복항공권 예약을 출발일까지 취소하지 않고 버티며 환불을 받아냈던 나다. 바우처로 환불해 주기로 악명 높은 유럽의 저가항공사로부터도 현금환불을 받았었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마지막일지도 모를"을 되뇌던 바로 그 여행을 "지금 포기하면 언제 또”라는 애잔한 마음이 나를 부추겼다. 나는 불안을 눌러두고 자그레브발 류블랴나행 밴을 타기로 했다.

2025년 9월 9일 한국.
귀국 후, 이번엔 이스라엘이 도하를 공습했다는 뉴스다. 이미 다녀왔으니 강 건너 불로만 치부하기엔 이번 여행길에서 겪었던 긴장이 너무 생생했다. 불과 두 달 전, 내가 경유했던 공항은 우회와 회항, 영공과 공항폐쇄를 거듭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저렴한 다구간 항공권과 스탑오버의 호화로운 호텔이 불안을 덮어줄 수 있을까? 아니다. 여행은 낯선 풍광 속에서 자기와 마주하는 과정, 기대와 긴장은 따라오지만 공포만은 제외되어야 한다.
클라라가 왓츠앱으로 안부를 물어왔다. 여독이 풀렸는지, 일상은 평온한지. 그녀는 내년쯤 남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남미 역시 정치·사회적 불안 요소가 많은 곳이다. 우리는 “안전제일”이라는 산업현장의 구호를 합의처럼 주고받았다. 히말라야의 거점인 네팔, 서유럽의 문화중심인 프랑스에서조차 거친 소요가 일어나는 이 시점, 여행은 늘 유혹과 위험 사이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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