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풍광

에피소드 10 - 자다르, 황혼과 여명

Senior Magazine 2025. 10. 10. 17:52

아드리아해의 황혼

아드리아해는 오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짙은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해변에서 바다 오르간은 파도에 맞춰 비슷한 패턴의 소리를 내며 낮게 숨 쉬고 있었다. 단조롭지만, 그 소리는 파도와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자다르의 일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려다 그만 깜빡 잠이 들어, 그토록 기다리던 일몰의 순간을 놓친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아드리아 해의 황혼은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을 만했다. 다만 ‘일몰 무렵의 바다 오르간 소리가 최고’라는 말은 6월 말 성수기에는 해당되지 않았다. 수많은 인파의 소음 속에서 오르간 소리는 묻혀버렸고, 같은 건축가가 만든 ‘태양의 인사’의 원형 조명 또한 생각만큼의 감흥을 주지 못했다. 오후의 한산한 해변에서 들었던 오르간 소리를 미리 동영상으로 담아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새벽 네 시, 숙소 옆 성당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맑고 또렷한 소리에 잠이 깼다. 다섯 시 종이 다시 울리자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성벽을 따라 조용한 올드타운을 천천히 걸었다. 폐허가 된 고대 로마 포럼의 비석과 조각들, 그리고 아마추어의 눈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마다 다른 양식의 건축물들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돌길이었다. 수백 년의 세월에 닳고 닳아 반들거리는 돌길은 새벽이슬에 미끄러질 듯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끝을 옮기며 여명의 빛 속을 걸었다.

자다르의 Porta Terraferma (Land Gate; 육지 문)
자다르 올드타운의 성벽과 도로

새벽의 로마 포럼은 부서진 비석과 조각들이 제자리를 지킨 채, 폐허의 쓸쓸함을 고요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곁에서 성 도나투스 대성당은 바로 그 돌들을 옮겨와 제 몸을 세운 채, 태연히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났다. 주저앉은 과거와 당당히 선 현재가 한 광장에서 묘하게 마주 보고 있었다. 날이 점점 밝아오자 성당과 교회, 성벽과 성문이 차례로 햇살을 받아 빛났다. 그 사이사이에는 카페와 레스토랑, 베이커리와 기념품 가게들이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대의 돌을 발치에 두고, 중세의 건물과 현대의 일상이 나란히 벽을 맞댄 채 자다르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로마포럼을 중심으로 성 도나투스 성당(왼쪽)과 성 마리아 교회(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