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미널 왼쪽으로는 항구가, 정면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이 보였다. 버스는 천천히 스플리트를 벗어나 고갯길을 올랐다. 멀어지는 바다와 함께 '모소르'산의 능선도 점점 뒤로 밀려났다. 반쯤 졸며 오른편의 푸른 해안선을 바라보던 중, 문득 눈이 번쩍 떴다. 왼편으로 에메랄드빛 강이 흘렀고, 그 옆으로 작은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강물은 윤슬로 반짝였고, 오렌지색 지붕들이 낮게 내려앉은 풍경은 마치 수채화 같았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마음이 먼저 반응했고 손은 따라가지 못했다. 검색창에는 ‘코민’, ‘네레트바강’이라는 이름이 남았다. 만약 이번 여행이 계획 없는 방랑이었다면, 아마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내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 그 이름이 약속처럼 나를 붙잡고 있었다.

여행 전 숙소를 예약할 때부터 두브로브니크는 비쌌다. 다른 도시의 싱글룸 요금으로 도미토리의 침대 한 칸을 구하면 다행이었다. 도시는 산비탈 위에 포개지듯 자리 잡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계단이었다. 비교적 현대적인 ‘라파드’ 지역에 숙소를 얻었지만, 이곳 역시 언덕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미 부다페스트에서 고난의 언덕길을 경험한 터라 BOLT부터 호출했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연결된 공유택시 요금은 다른 도시의 몇 배였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지만, 그 문턱은 결코 낮지 않았다. 숙소는 꽃과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며져 있었고, 비품도 잘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입구에서 방까지 이어진 가파른 철제 계단과 캐리어를 펼치기조차 버거운 좁은 방은 여행자의 숨을 막았다. 그래도 피로에 젖은 몸으로는 불평조차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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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언덕을 한참 내려가야 올드타운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배차 간격이 길고 이미 관광객들로 북새통이었다. 한낮의 뙤약볕 아래 성벽 투어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파에 질려 성안의 광장과 골목을 서둘러 빠져나와 굴곡진 해안선을 따라 걷다 전망 좋은 카페를 만나 숨을 돌렸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면 다시 바다가 펼쳐졌고, 그 끝에서는 또 성벽이 이어졌다. 완만한 언덕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갔지만, 성벽과 붉은 지붕, 바다가 어우러진 전경을 완전히 담기에는 어딘가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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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날, 그 아쉬움을 털어내고 싶었다. 아침나절 케이블카를 타고 '스르지'산 정상에 오르자, 드디어 두브로브니크가 왜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바다는 섬과 육지를 잇는 빛의 다리처럼 반짝였고, 성벽과 붉은 지붕은 그 위에 고요히 떠 있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짧은 해안길은 빼어난 풍경으로 크로아티아의 마지막 여정을 빛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잦아들었다. 붐비는 인파도, 가격표도, 오르막길의 숨 가쁨도. 아흐레 동안 이어진 크로아티아 종단 여행은 한 시간 남짓한 비행으로 끝이 났다. 다음 목적지는 슬로베니아.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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