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블랴나행 밴에는 승객이 단 두 명뿐이었다. 기사와는 미리 왓츠앱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뒤, 화상통화로 서로를 확인하며 자그레브 버스터미널 약국 앞에서 스파이 영화처럼 접선했다. 밴은 터미널의 플랫폼이 아닌, 터미널 바깥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기사는 엔지니어로 일한다는 청년 승객과 종종 이야기를 나누며 가끔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나는 낯선 언어의 대화에 끼어들 수 없어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크로아티아 풍경을 눈에 담았다. 앞으로 플리트비체 호수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잠깐의 아쉬움이 스쳐갔다.
국경 통과는 간단했다. 승객 둘의 여권을 차창으로 내밀자, 국경 경찰이 확인만 하고 돌려주었다. 고속도로는 한적했고, 넓은 들판 너머로는 슬로베니아의 높은 산맥이 점점 다가왔다. 도시 초입에서 처음 마주친 것은 ‘용의 다리’였다. 서양에서 용은 흔히 악이나 탐욕의 상징이지만, 류블랴나는 이 상징을 거꾸로 뒤집었다. 건국의 신화 속에서 제압과 퇴치의 대상이던 사악한 용을, 이제는 힘과 용기의 수호신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도시 이름 ‘류블랴나(Ljubljana)’는 슬로베니아어로 ‘사랑받는(beloved)’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의 품격도 그렇지만, 악의 이미지를 가진 용을 상징으로 삼은 그 포용력만으로도 ‘사랑받을 만한 도시’라 할 만했다.

숙소는 중앙역에서 걸어서 15분쯤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류블랴나는 당국의 엄격한 규제와 지역 택시기사들의 반발로 승차공유 서비스인 BOLT가 진출하지 못했고, UBER도 매우 제한적으로 일부 택시 기사만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햇볕이 뜨거웠지만 다행히 길은 대부분 평지라 캐리어를 끌고 걸을 만했다. 반쯤 걸었을까, 구글맵의 라이브 뷰 기능이 뜨거운 기온 때문에 멈춰버렸고, 나무 그늘 아래서 스마트폰의 열을 한참을 식히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류블랴나에 머무는 동안 택시나 시내버스를 이용할 일은 없었다. 숙소에서 도시중심까지는 길어야 20분 거리. 걷기에도, 타기에도 애매한 거리였다. 게다가 주요 명소 대부분이 차 없는 구역 안에 있어, 걸어서 가나 차량으로 가나 도착 시간은 큰 차이가 없었다.

이 매력적인 도시는 하루 이틀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지만,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닷새를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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