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풍광

에피소드 11 - 스플리트, 황제와 강아지의 고향

Senior Magazine 2025. 10. 12. 19:01

바다에서 바라본 스플리트

시리도록 푸른 바다와 눈부신 하얀 돌빛의 도시, 달마티아 강아지와 황제가 고향을 공유하는 곳. 스플리트는 역사와 번영이 공존하는 바다의 도시였다. 역사적으로 벨레비트 산맥 남쪽의 달마티아 지역은 아드리아해 건너 로마의 영향권에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스플리트는 지리적으로 로마와 가장 가까운 도시다. 구글맵에서 아드리아해를 가로로 늘려보면 두 도시는 위도상으로 거의 나란하다.

자다르에서 버스로 두 시간 반.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답게 스플리트는 도시의 기세가 느껴졌다. 도심의 비싼 숙소를 피해 터미널에서 20분쯤 떨어진 언덕 위의 깨끗한 숙소를 이틀간 머물 곳으로 정했다. 주인은 인근 섬으로 가는 페리를 타보라며 강력히 권했다. 스플리트 앞바다의 섬들이 아름답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섬이라 하면 떠오르는 쾌속정과 수상 스포츠는 이제 나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 애초에 포기했던 터였다. 하지만 배편 예약이 필요 없는 가까운 섬이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었다.

브라치 섬으로 가는 페리

대기 중이던 페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갈매기들이 뱃전을 넘나들었지만, 강화도~석모도 구간처럼 스낵을 던지는 관광객은 거의 없었다. 50분 후 페리는 브라치 섬의 수페타르 항에 닿았다. 항구를 따라 늘어선 카페와 레스토랑은 코발트빛 바다와 잘 어우러졌다.

브라치 섬의 수페티르 항

약간의 피로가 느껴졌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성모 마리아 수태고지(Annunciation) 교회를 찾아갔다. 6세기 성 베드로 대성당 터 위에, 섬에서 캐낸 하얀 돌로 세워진 교회는 햇빛 아래 눈부시게 빛났다. ‘수페타르(Supetar)’가 ‘성 베드로(Sveti Petar)’에서 유래했다는 설(說)도 그 자리에서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다. 그러나 강렬한 햇살 탓이었을까. 눈이 따갑고 눈물이 흘렀다. 항구의 레스토랑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며 잠시 쉬었지만, 컨디션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섬에서 더 머물려던 계획을 접고 바로 스플리트로 돌아왔다. 그때 처음으로 ‘무계획 여행’의 진짜 효능을 느꼈다 — 마음이 이끄는 대로 멈추고, 상황에 따라 방향을 바꾸는 자유 말이다.

성모 마리아 수태고지(Annunciation) 교회

몸이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스플리트의 상징인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만큼은 빼놓을 수 없었다. 하층민 출신으로 제국의 방위를 위해 전장을 누비던 장군에서 황제로 즉위한 그는 로마 역사상 처음으로 스스로 퇴위하고, 고향의 바닷가에 궁전을 짓고, 여생을 채소를 가꾸며 보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상상이 떠올랐다. 혹시 달마티아 강아지가 말년의 늙고 외로운 황제 곁을 지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

현대의 눈으로 보면, 그 궁전은 ‘은퇴용’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거대하고 호화롭다. 그러나 제국의 시선으로 본다면, 오히려 검소했을지도 모른다. 중심부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들에는 유적과 박물관, 레스토랑과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고대와 현대가 한 호흡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공화국 광장의 레스토랑

저물어가는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공화국 광장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스스로에게 작은 호사를 허락했다. 어둠이 내리자 올드타운 광장에서 밴드가 연주를 시작했고, 흥에 겨운 중년 부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순간, 고대의 노 황제와 오늘의 노 여행자가 같은 바람을 맞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올드타운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