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풍광

에피소드 16 블레드 호수, 오이스트리차 언덕

Senior Magazine 2025. 10. 25. 18:23
오이스트리차 언덕에서 본 알프스의 눈동자

블레드 호수를 ‘알프스의 눈동자’, 블레드 섬을 ‘알프스의 진주’라 부르지만, 내게는 다소 상투적으로 들렸다.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판에 박힌 수식어 때문에 진짜 얼굴이 가려질 때가 있다. 대체로 투어 상품은 인증샷(우리 때는 ‘증명사진’이라 불렀다)에 좋은 곳 위주로 짜여 있다. 그런 곳은 으레 사람으로 붐비고, 입장료도 만만치 않다. 나는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장소에 들르지 않는다. 케이블카는 양보한다 해도, 단지 언덕 하나를 오르내리는 푸니쿨라는 가급적 피하는 편이다. 미각도 예민한 편이 아니라 어디를 가면 무엇을 꼭 먹어야 한다는 말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느끼며, 여행비도 아낄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믿는 자유여행의 방식이다.

뷰 포인트 세 곳의 이정표. 믈리노 선착장에서 15분 소요.

블레드 성은 이미 홈힐(Hom Hill) 위에서 내려다보고, 자시프(Zasip) 마을에서 올려다본 것으로 충분했다. 대신 호수를 제대로 품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검색 끝에 세 곳을 추렸고, 그중에서 고도 611m의 오이스트리차(Ojstrica)를 선택했다. 호숫가에서 약 30분 거리라면 내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히니에서 블레드 믈리노(Bled Mlino)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호숫가는 이미 수영객과 카누를 즐기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잠시 물가를 따라 걷다가 산길로 접어들었다. 예상과 달리 초반 길은 완만해, 천천히 몸이 산에 적응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맞은편에서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며, 그들의 투어 일정이 우리보다 반 걸음 앞서 있다는 느낌이 스쳤다.

오이스트리차 언덕. 한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바위 틈을 통과해야 한다.

정상 직전 마지막 구간은 쉽지 않았다. 쇠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구간도 있었고, 노약자에게는 꽤 위험하게 느껴질 만큼 경사도 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야가 활짝 열렸다. 카라반케(Karavanke) 산맥 아래, 호수 위에 섬과 성이 조화롭게 떠 있는 모습은 보히니 호수의 고요함과 대비되어 더욱 찬란하게 다가왔다. 다들 여러 장의 ‘인생샷’을 남겼고, 급한 경사를 내려오는 길에 오간 말은 한마디면 충분했다. “Totally worth it.” 굳이 해석하자면 “대박이네요” 혹은 “올라올 만했어요”쯤 되겠다.
산길을 벗어나 호숫가의 데크길을 따라 선착장까지 걸었다. 그 후 블레드에서 무엇을 먹었는지, 어떻게 류블랴나로 돌아갔는지는 흐릿하다. 그러나 오이스트리차에서의 순간만은 블레드는 오롯이 블레드였다.

호숫가에서 바라 본 블레드 섬과 블레드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