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슬로베니아라는 나라로 이끈 것은 의외로 세 명의 스포츠 스타였다. 경기 규칙조차 잘 모르고 그저 아름다운 주변 풍경을 즐기며 시청하던 2020년 ‘투르 드 프랑스’에서, 당시 21세였던 타데이 포가차르(Tadej Pogačar)가 같은 나라의 베테랑 프리모즈 로글리치(Primož Roglič)와 최종 스테이지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그때 이 낯선 나라의 이름이 내 기억에 깊이 남았다. 그는 최근 6년간 4번의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하며 나를 팬으로 만들었다.

이어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약체로 평가되던 슬로베니아 농구대표팀을 4강까지 이끈 22세의 루카 돈치치(Luka Dončić)가 등장했다. 나는 곧 그의 열혈 팬이 되었고, NBA 댈러스 매버릭스 경기를 놓치지 않게 되었다. 스포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손녀를 은근히 팬덤으로 끌어들였고, 해외 직구로 매버릭스 티셔츠를 주문해 주말 홈경기 중계 때 함께 입고 응원했다. 올해 초 돈치치가 LA 레이커스로 깜짝 트레이드되었을 때, 손녀와 나는 전 세계 팬들과 함께 당혹감과 분노를 나누었다.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질문이 남았다. 도대체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걸출한 스타들을 배출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번 여행의 우선순위는 슬로베니아였다. 보히니의 산길을 따라 달리던 가족단위의 산악자전거 행렬, 벨리카 플라니나 고원에서 마주친 탄탄한 몸의 청년들, 작은 마을 인근에 자리 잡은 스키점프대는 그 물음에 조용히 답을 던졌다. 이 빼어난 자연환경과 맑은 공기 속에서 사람들의 심폐능력이 단련되고, 그 체력이 대대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로베니아라는 이름 안에 숨겨진 네 글자 “LOVE”를 감각적으로 담아낸 국가 슬로건 “I FEEL SLOVENIA”는 그런 맥락에서 더욱 깊이 와닿았다. 이 나라는 스포츠만이 아니라, 자연과 감성, 일상 속의 여유를 함께 사랑하라고 조용히 속삭이는 듯했다. 도심을 벗어나면 마을마다 어김없이 교회가 있었고, 높은 봉우리에는 성이나 예배당이 우뚝 서 있었다. 성은 중세 봉건사회의 계급 구조와 외세 침략의 쓰라린 역사를 품은 건축물이었고, 교회는 고단한 농민들의 유일한 위안처였다. 그러나 그 시대의 거친 자연 속에서 생존을 위해 세웠을 건축물들이 이제는 귀중한 유산으로 거듭나 후손의 삶을 지탱한다는 사실이 묘하게 인상 깊었다.

슬로베니아를 떠나는 날, 류블랴나 중심가에서 가이드 매트가 알려준 스포츠 매장을 찾았다. 철 지난 매버릭스 유니폼은 대폭 할인된 가격이었지만 이미 애정이 식어 손이 가지 않았다. 레이커스의 노란색은 아직 마음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고 가격도 비쌌다. 그 대신 다행히도 슬로베니아 대표팀 어린이용 티셔츠를 발견했고, 손녀는 그것을 무척 기뻐해 주었다.

이제 사랑받는 도시 류블랴나를 떠나야 했다.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아려왔다. 그래도 앞으로 포가차르가 페달을 밟으며 선두를 질주할 때, 돈치치가 승부를 바꾸는 3점슛을 터뜨릴 때, 나는 트리글라브 산과 보히니 호수, 오이스트리차 언덕과 벨리카 플라니나를 함께 떠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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