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풍광

에피소드 17 - 벨리카 플라니나, 바다 대신 산으로

Senior Magazine 2025. 10. 27. 14:51

고원에 펼쳐진 목초지와 오두막

류블랴나에서 이틀을 쉬며 당일치기 여행지를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은 피란(Piran)이었다. 성곽 위에서 붉은 지붕의 마을과 아드리아 해를 바라보고, 베네치아 양식의 광장에서 바다 건너 베네치아를 떠올려보는 일. 여기에 포스토이나 동굴과 프레지야마 성까지 포함하면 하루가 제법 빡빡해진다. 대중교통으로는 무리이고, 투어를 이용한다 해도 새벽같이 일어나 밤늦게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게다가 높은 곳에서 붉은 지붕의 마을을 내려다보는 경험은 며칠 전 두브로브니크에서 이미 충분히 했고, 2년 전 조지아의 시그나기에서도 느껴봤다. 물론 피란은 두브로브니크보다 차분할 것이고, 시그나기만큼 고즈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굴과 성의 입장료까지 생각하니 마음이 쉽게 기울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피란에 가지 않아야 할 이유를 나열하며 체력과 예산, 이미 짜여 있는 일정과 스스로 타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언젠가부터 바다보다 산에 더 끌리게 된 내 취향을 뒤늦게 인정하는 과정이었을 수도 있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고전의 말처럼 깊은 뜻을 담은 선택은 아니었다. 나는 어질거나 지혜로운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살다시피 했던 청소년 시절의 기억을 일부러 피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만 보면 뛰어들던 그때의 나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금의 나는 분명 달랐다.

그렇게 피란 대신 선택한 곳은 벨리카 플라니나(Velika Planina)였다. ‘큰 고원’, 즉 넓은 목초지를 뜻하는 말이지만, 고유명사 자체의 울림도 묘하게 마음을 끌었다. 높은 산속 고원의 목가적인 풍경, 그리고 또 하나의 알프스를 마주한다는 기대가 있었다. 대중교통만으로는 이동이 까다로웠지만, 다행히 소규모 투어를 찾을 수 있었다.

벨리카 플라니나의 소떼
캄닉 사비냐 알프스를 가리키는 나

류블랴나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려 시골 마을들을 스쳐 지나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 산중턱의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 남짓 걸렸다. 그곳에서 해발 1,500미터의 목초지 마을까지 하이킹이 시작되었다. 홍콩에서 온 젊은 여성 세 명, 영국 출신의 개발자 한 명, 그리고 나. 여섯 명의 팀을 이끈 가이드는 류블랴나 대학에서 전기전자를 전공한다는 젊은 청년, 매트(Matt)였다. 오르는 길은 비교적 완만했지만, 모두가 자연스럽게 내 걸음에 보조를 맞춰 주었다. 나 역시 스틱 한 짝에 의지하며 뒤처지지 않으려 애썼다. 조금 숨이 차오르기 시작할 즈음, 시야가 갑자기 탁 트였다. 캄닉 사비냐 알프스(Kamnik Savinja Alps) 아래로 드넓은 목초지와 비슷한 모양의 오두막들이 펼쳐졌다. 초록빛 고원 위에서 오두막 사이로 부는 바람은 잔잔했고, 소떼들은 방울소리를 내며 풀을 뜯고 있었다. 

캄닉 사비냐 알프스 전망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이 높은 곳까지 점령했다는 매트의 설명이 잠시 풍경의 아픈 이면을 떠올리게 했지만, 다시 눈앞의 고요함이 감각을 평온함으로 채웠다. 산속 레스토랑의 점심은 투박했지만 푸짐하고 맛있었다. 관광지의 흔한 바가지요금은 없었고, 도심의 반값 정도에 불과한 저렴한 가격이 인상적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지나쳐 온 작은 마을의 스키 점프대가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았다.

투어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투어가 끝나고 그룹은 류블랴나 중앙역 앞에서 헤어졌다. 정겹다고 말하기엔 부족하지만, 하루를 함께 걸었다는 묘한 동질감이 있었다. 나는 겸연쩍은 마음으로 매트에게 작은 액면의 지폐 한 장을 건넸다.

내게는 이제 슬로베니아에서의 마지막 하루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