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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21 - 블타바강의 클라이맥스, 프라하 1

Senior Magazine 2025. 12. 15. 10:21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프라하에 도착한 순간보다도 그 이전의 공백이 더 또렷하다. 체스케 부데요비체에서 프라하까지 이어진 두 시간은 기억 속에서 통째로 빠져 있다. 플릭스버스에 올랐고, 내렸다는 사실만 남았다.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진도, 감각도, 생각도.
버스는 예정 시각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프라하에 도착했다. 중앙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울렸고, 사람들은 일제히 움직였다. 나는 그 흐름에 섞여 캐리어를 끌고 내렸다. 깊이 잠들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잠과 각성의 경계에서 자동으로 반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의심은 없었다. 기억이 없으면 의심도 생기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름다운 건물 안에서야 비로소 무언가 어긋났다는 것을 느꼈다. 역사(驛舍)를 잠시라도 숨 돌릴 공간으로 삼으려 했으나 붐비는 사람들로 떠밀리듯 다시 광장으로 나오면서, 나는 목적지가 중앙버스터미널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계획형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잠시 움찔했지만, 그 정도의 균열은 여행을 망치지 못한다. 프라하에 도착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언덕에서 내려다 본 프라하 중앙역

그날의 나는 사람 많은 장소에서 택시를 부르는 일을 지나치게 어렵게 느꼈다. BOLT 앱을 켜둔 채 캐리어를 끌고 점점 한적한 쪽으로 걸어갔다. 길은 자연스럽게 언덕이 되었고, 숨은 조금씩 가빠졌다. 그렇게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프라하 중앙역의 플랫폼이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서 있었다. 지금도 그 장면은 남아 있다. 의도하지 않았기에 더 선명한 풍경으로. 현재의 나는 그 사진 한 장이 왜 남아 있는지 이해한다. 길을 잘못 든 대가로 얻은 전망이었고, 체력 소모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었다. 여행에서는 종종 이런 식으로 균형이 맞춰진다. 일본식 라멘집에 들어가 허기와 갈증을 달랬다. 그때는 몰랐지만, 체코 국립중앙박물관 뒤편 언덕에 자리한 가게였다. 여행 중의 장소들은 늘 그렇다. 의미는 나중에 따라온다.

국립극장

프라하에서의 첫날, 나는 예산을 조금 넘겨 국립극장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드레스덴으로 이동하기 전, 이 도시의 결을 몸으로 먼저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계획이라기보다 감각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바츨라프 광장
화약탑

당시의 나는 목적지가 없었다. 정보도 거의 없었다. 오래된 건물과 첨탑, 조형물과 동상들, 붐비는 거리, 그리고 블타바강에 걸쳐 있는 다리들. 걷고, 멈추고, 바라보고, 찍으며 하루를 채웠다. 그렇게 프라하는 첫날부터 나에게 도시 전체를 한꺼번에 내어주지 않았다.

마이 백화점의 조형물

그날 유독 눈에 걸린 조형물이 하나 있었다. 비교적 현대식 건물 외벽에 설치된 나비와 비행기가 합쳐진 형상. 날개는 실제로 펄럭였고, 그 존재는 너무도 노골적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예술 작품이라기보다, 중세 도시의 풍경을 배경 삼아 세워진 대형 쇼핑몰의 선전물로 받아들였다. 지금의 나는 그 조형물의 의미를 안다. 다비드 체르니의 작품으로, 스핏파이어 전투기를 닮은 몸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과 육군에서 복무했던 체코슬로바키아 조종사들을 향한 헌사였다. 체코의 NATO 가입 25주년과 NATO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며, 원래는 브뤼셀에 설치될 예정이었던 작품. 프라하에는 단 1년만 허락된, 잠시 머무는 존재였다. 내가 이 도시를 찾았을 때는 2025년 7월 초였다. 전시 기간은 이미 끝난 뒤였으니, 철거가 조금 늦어졌던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조형물을 보았다는 사실보다도, 곧 사라질 것이라는 조건 속에서 마주쳤다는 점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석양 무렵 레기오 다리에서 바라본 카를교

아무래도 스메타나의 「블타바」에서 들려오는 ‘비셰흐라드’의 장엄한 절정과, 엘베강으로 합류하며 서서히 가라앉는 조용한 선율은 드레스덴 이후로 미뤄야겠다.